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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시작: 천고마비의 계절(1) "언니!!" "으악!!" 빗자루를 턱에 괴고 벽에 기대어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던 루비아는, 갑자기 들려온 웬디의 외침에 화들짝 놀라 중심을 잃고는 빗자루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언니,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멍 때려? 에드거 오빠가 아까부터 부르고 있어." 그 말에 주방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잔뜩 풀이 죽은 표정으로 굳어 있는 에드거가 보였다. "아, 미안... 오늘 좀 피곤한가 봐." "하비 오빠 가게가 요즘 많이 바쁜가 보네?" "어... 뭐,그렇지." 루비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요즘 가게 일과 최근 일어난 사건의 일로 매일같이 분주했다. 게다가 오늘은, 오늘 꿈인지 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살며시 느껴진 그의 손길이 계속 마음속에 맴돌아 괜스레 신경이 쓰였다. "루...루비아 누나.. 2025. 9. 13.
루케오와 에델베인(2) 에델베인은 루케오의 모두를 차례로 바라보았다.오는 길에 루비아에게서,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안전을 위해 가면을 쓰고 있을 것이라 들었지만, 방 안의 사람들은 달랐다. 긴장된 얼굴, 그러나 그 너머로 결연한 눈빛을 드러낸 채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그 눈빛 속에서, 에델베인은 그들이 어떤 각오로 가면을 벗고 이 자리에 섰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에델베인 카멜리아스 입니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차분히 인사했다.뜻밖의 정중한 태도에 루케오의 모두가 허둥대며 자기소개를 잇따라 했다. 짧은 인사가 마무리되자, 루비아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에델베인님, 이쪽에 앉으세요." 그녀가 가장 앞자리에서 왼쪽 의자를 빼주자, 에델베인은 주위의 시선을 묵묵히 받으며 그 자리에 앉았다.. 2025. 9. 7.
(창작 소설)루케오와 에델베인(1) 희미한 달빛만이 우리를 비추는 깊은 밤.에델베인은 그녀의 손을 잡은 채, 그저 조용히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루비아씨..." 그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진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푸른 눈동자가 전하는 따뜻함과 달리, 루비아의 손끝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에델베인은 한참을 바라보다가, 이내 손을 놓으며 조용히 말했다. "농담이었습니다. 루비아씨를 잡을 생각은 없습니다.하지만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건 진심입니다. 도움이 된다면 돕고 싶다는 것도요." 그는 한 걸음 물러나며 뒷목을 쓸어내렸다. "...믿어주세요." 루비아는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이 사람을 믿어도 괜찮은 걸까?왕국의 도움이 있다면 분명 수월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뒤따른다. 에델베인은 더 말하지 않고 기다렸다.고요한 밤공기만.. 2025. 8. 23.
(창작 소설)튜베로즈 식당의 루비아(5): 그림자 속 진실 [본 스토리는 3인칭 관찰자 시점입니다.] "오늘 재미있었습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루비아의 인사는 유난히 조용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급히 몸을 돌려 사라지듯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에델베인은 바라보다가, 마치 놓쳐서는 안 될 무언가가 저만치 사라지는 듯한 불안한 마음에 황급히 한 걸음을 내디뎠다. "루비아씨!"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점점 멀어질수록, 에델베인의 가슴 한켠은 서늘해졌다.그날 밤, 에델베인은 기사단 숙소의 개인 방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엔 미처 작성하지 못한 보고서가 쌓여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허공에 머물렀다. 펜을 잡고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하던 그의 머릿속엔 루비아의 마지막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다. 그.. 2025. 7. 27.
(창작 소설)튜베로즈 식당의 루비아(4) 오랜만에 찾아온 휴일.창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은 금가루처럼 가볍고 따뜻했다. 창틀 위에 내려앉은 먼지마저 반짝거릴 만큼, 오늘은 눈부시게 평화로운 날이었다.부엌에서는 갓 구운 케이크의 향이 퍼지고 있었다. 달콤한 과일과 부드러운 크림이 어우러진 그 냄새는 천천히 집 안을 감쌌다.나는 조심스럽게 케이크 위의 장식을 마무리하며, 조용히 속삭였다. "매번 받기만 하는건 미안하니까..." 식탁 위에는 반듯이 접힌 냅킨과 가지런히 놓인 접시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작은 소풍이라도 떠나는 듯한 설렘이 식탁 위에 깃들어 있었다. 햇살이 머금은 따스한 방 안.나는 거울 앞에서 옷장을 뒤적이며 서성이고 있었다.무난하고, 나를 감춰줄 수 있는 색과 형태의 옷들. 그중 하나를 꺼내 들고 단추를 잠그려던 순간ㅡ 문이 살며시.. 2025. 7. 25.
(창작 소설)튜베로즈 식당의 루비아(3) 달빛이 조용히 내려앉은 거리.식당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그곳에는 나와 카멜리아스님, 단 두사람만이 서 있었다.그의 손엔 내가 건넨 들꽃 한 송이가 흔들리고 있었다.그는 깊은 숨을 들이쉰 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무표정하던 얼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어슴푸레 스며들어 있었다. "그동안의 제 행동에 대해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제 행동이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입술을 다물었다.이 조용한 밤의 공기처럼, 내 마음도 고요했지만 어디선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루비아씨를 처음 봤을 때부터... 계속 눈길이 갔습니다." 그는 잠시 시선을 내렸다가 나를 바라보았다.달빛을 머금은 그의 푸른 눈동자가 반짝였다. "항상 열심히 하시는 .. 2025. 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