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델베인은 루케오의 모두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오는 길에 루비아에게서,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안전을 위해 가면을 쓰고 있을 것이라 들었지만, 방 안의 사람들은 달랐다. 긴장된 얼굴, 그러나 그 너머로 결연한 눈빛을 드러낸 채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 눈빛 속에서, 에델베인은 그들이 어떤 각오로 가면을 벗고 이 자리에 섰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에델베인 카멜리아스 입니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차분히 인사했다.
뜻밖의 정중한 태도에 루케오의 모두가 허둥대며 자기소개를 잇따라 했다. 짧은 인사가 마무리되자, 루비아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에델베인님, 이쪽에 앉으세요."
그녀가 가장 앞자리에서 왼쪽 의자를 빼주자, 에델베인은 주위의 시선을 묵묵히 받으며 그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루비아가 숨을 고르듯 가볍게 심호흡한 뒤 일어섰다.
"루케오에 협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희야 말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짧은 응답 후, 그녀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선, 실종 사건에 대해 서로 아는 정보를 공유합시다."
그녀의 말에 에델베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표정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아도니아 왕국에서 첫 신고가 들어온 건 한 달 전이었습니다. 지금가지 보고된 실종자는 세명. 모두 평민이었고, 그들 사이에 특별한 연관성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가 북부 상업 지구 인근이라는 점입니다."
그는 준비해온 서류를 꺼내 보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세 사람 모두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기사단에서는 인신매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지만, 아직 증거가 부족하여 공식 수사는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서류를 살펴보던 하비가 그것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신고가 꽤 늦었군요."
그의 말에 에델베인이 고개를 돌리자, 옆자리에 있던 아삽이 그에게 여러 장의 서류를 건내었다.
읽어 내려간던 에델베인의 눈이 점차 커졌다.
그를 지켜보던 루비아가 짧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실종자는 총 스물세 명. 에델베인님의 말씀처럼 모두 북부의 상업 지구 주변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모두 돈이 급하게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종이 시작된 것은 두 달 전이고 기사단에 신고가 접수되던 무렵, 저희는 실종된 남성 한 명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사인은 약물 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였습니다."
"약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종된 자의 가족들은 대부분 '돈을 벌러 떠난다'는 말을 믿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신고가 늦어진 거죠."
"그중 의심을 품은 일부가 신고를 올린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에델베인은 자신의 백금발을 가볍게 쓸어올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약물 거래...아니면 실험 대상...?"
하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일 겁니다."
서류를 읽던 에델베인은 고개를 들었다.
"기사단이 가진 정보는 이미 루케오에서 파악하고 있었군요. 협력이라기보다는, 이정도면 기사단이 도움을 받는 셈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표정에는 깊은 고민이 비쳤다.
"저를 이곳에 부른 이유가 단순히 정체가 드러났기 때문은 아니군요.."
에델베인의 시선이 루비아를 꿰뚫듯 향했다.
"...귀족 가문 중 누군가가 이 일에 연루되어 있군요."
짧은 침묵. 루비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에델베인은 무겁게 숨을 내쉬며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왕국 수사에도 혼란을 줄 정도라면... 단순 귀족은 아닐 겁니다."
루비아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러나 미소를 잃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에델베인님, 저희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모신 겁니다."
그녀는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루케오의 수장. 루비아. 정식으로 아도니아 왕국에 협조를 요청합니다."
잠시의 침묵 끝에, 에델베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 또한 단단해졌다.
"저, 에델베인 카멜리아스는 그 요청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다만 공식 협조를 위해서는 기사단장과 왕실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내일 아침 보고서를 작성해 기사단장께 제출하겠습니다. 물론 루비아씨와 루케오를 최대한 보호하며, 협조의 필요성을 강조하겠습니다."
그의 대답에 모두의 표정이 풀어졌다.
"좋아, 그럼 실종자 외의 정보도 공유하자고."
라코타는 기지개를 켜며 말하자, 에델베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직 승인이 없는 상태에서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해도 괜찮겠습니까? 승인이 거부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그와 무관하게 돕고 싶지만, 절차가 없으면 불안하지 않으십니까?"
그의 말에 라코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도니아 왕국의 빛나는 검인데, 설마 승인이 안 날까요?"
뜻밖의 농담에 에델베인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
당황해 헛기침을 하는 그의 모습에 루비아는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라코타씨, 앞으로 함께할 분인데 예의를 갖추는 게 좋겠죠?"
"크..크흠..."
그녀는 에델베인을 향해 눈을 맞추면 미소 지었다.
"어떤 식으로 흘러가든, 에델베인님을 믿습니다."
그 순간, 에델베인의 표정에도 비로소 온기가 번졌다.
그날 밤, 그들은 새벽까지 정보를 공유하며 수사의 방향을 논의했다.
회으가 끝날 무렵, 라코타는 하품을 하며 자고 가겠다고 말하고는 회의실을 나갔다.
케인 또한 더욱 짙어진 눈을 비비면서 그를 따라 나갔다.
아삽은 "집이 바로 이 앞이니 이만 돌아가 볼게요." 라고 말하며 아사비케시를 떠났고, 하비는 회의실을 정리하며 루비아를 향해 말했다.
"늦었으니 자고가."
루비아는 기지개를 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전히 서류를 들여다보는 에델베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주무시고 가시겠어요?"
에델베인은 루비아의 제안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묵는다고요? 괜찮을까요?"
그가 망설이자, 하비가 그의 손에서 서류를 가져가며 말했다.
"기사단까지 꽤 멀지 않나요? 밤도 늦었으니 아침에 가시죠. 아, 물론 저는 혼자 잘 겁니다."
'혼자 잘 거다'라는 말에 에델베인은 미묘하게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루비아의 안내를 따라 복도를 걸으며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루비아시 덕분입니다. 루케오와 협력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운명이란 참 알 수 없군요."
벽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촛불에 반짝이는 에델베인의 백금발과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푸른 눈동자가 어슴푸레 빛났다.
한 명은 백작가문의 차남이자, 왕실 기사. 또 한 명은 비밀 조직의 수장.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이제 같은 목표를 향해 손을 잡았다.
그들 앞에는 미지의 위험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서로의 존재가 그 두려움을 조금은 덜어주고 있었다.
루비아는 안쪽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방 옆의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기 시작했다.
물이 채워지는 동안 창문을 열어 데미안을 불렀다.
커다란 검은 새가 창가에 살며시 앉더니 에델베인의 손에 작은 피리를 물고 내려놓았다.
"이것은...?"
"이 피리를 불면 데미안이 에델베인님을 찾아갈 겁니다. 앞으로 자주 만나고 연락도 해야 할 테니까요. 아, 참고로 데미안은 육포를 제일 좋아해요."
그녀는 살며시 웃으며 옆의 옷장에서 깨끗한 수건을 꺼내 에델베인에게 건네주었다.
"따뜻한 물 준비됐어요. 시종이 없어 불편하시겠지만, 괜찮으시다면 피로를 푸는 건 어떠신가요? 내일 아침에도 훈련이 있으시잖아요."
그리고 또 다른 수건을 챙겨 들고는 문밖으로 나서며 덧붙였다.
"저는 아래층 욕실을 쓰겠습니다. 남은 방이 하나 뿐이라.. 저는 바닥에서 잘게요. 좋은 침대는 아니지만, 푹 쉬셨으면 좋겠네요. 그럼 이만."
에델베인은 수건을 들고 잠시 멍하니 있더니 황급하게 놀라 문을 닫고 나가려는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루비아는 그가 붙잡기도 전에 이미 방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점점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문 앞에서 한참 손을 뻗은 채 굳어 있었다.
"가...같이 잔다고요....?"
얼굴이 붉어진 그는 커다란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듯 얼굴을 감싼 상태로 잠시 동안 서있었다.그리고는 수건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욕조에서는 따뜻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편, 루비아는 별 생각없이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에델베인은 아직 욕실에 있는 듯 보이지 않았고, 방 안은 고요했다.
바닥에는 이미 이불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는 에델베인의 옷이 접혀 올려져 있었다.
그녀는 잠시 멈칫하다가 피식 웃었다.
먼저 눕는 사람이 임자지.
루비아는 그의 옷을 옷장에 넣고, 바닥에 깔려있는 이불 속에 몸을 파묻었다.
곧, 깊은 숨결이 방 안을 채우었다.
얼마 뒤, 목욕을 마친 에델베인이 조용히 방에 들어셨다.
침대 대신 바닥에 누워 있는 루비아의 모스베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결국 바닥에서 주무시는군..."
그는 그녀를 들어 침대로 옮기려 했지만, 손길에 루비아가 무의식적으로 팔을 휘젓으며 인상을 찌뿌리자 가만히 한숨을 내쉬고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에델베인은 루비아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다가, 살짝 내려간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는 촛불을 껐다.
왕실 기사인 자신이,지금 비밀 조직의 아지트에서 잠을 청하게 되었다는 것이 낯설었지만, 옆에서 자고 있는 그녀 덕분인지 편안한 감정도 동시에 들었다. 다만 살며시 들리는 그녀의 숨소리 때문에 자꾸 얼굴이 붉어져 갔지만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루비아는 그저 평온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을 뿐이었다.
"좋은 꿈 꾸세요. 루비아씨"
에델베인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창가에 앉아 있는 데미안이 두 사람을 조용히 지켜보며 가끔 날개를 정리했다. 아도니아의 밤은 깊어졌고,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고요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시간이 지나자 희미한 새벽 햇살이 방안을 서서히 비추기 시작했다. 에델베인은 눈을 뜨고 낯선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깨 위로 느껴지는 무게감에 고개를 돌리니, 검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루비아가 그의 팔을 베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바닥에서 자고 있던 그녀가 언제 올라온 것일까. 순간 당황했지만, 곧 그녀의 잠버릇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에델베인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읏..."
루비아가 작게 소리를 내더니 그의 허리를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방 안은 아직 따뜻하고 포근한 공기로 가득했고,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의 빛이 두 사람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에델베인은 루비아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았다. 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은 어제 밤의 카리스마 넘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루비아씨..."
에델베인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어나야 하는데..."
그는 조심스럽게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더욱 단단히 그의 허리를 감싸 안는 그녀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에델베인은 그녀의 무방비한 얼굴을 내려다보며 미소가 번졌다.
"이런 버릇이 있으신 줄은 몰랐네요."
조금은 부시시해진 그의 백금발이 이마 위로 흘러내리자 에델베인은 한 손으로 가볍게 쓸어올렸다.
"훈련에 늦으면 안 되는데..."
그는 결국 그녀를 깨울 수밖에 없었다.
"루비아씨, 일어나셔야 합니다."
부드럽게 부르는 목소리에 루비아가 눈을 떴고, 커다란 와이셔츠에 양팔에서 느껴지는 단단함. 그리고 고개를 서서히 올리자 햇빛에 빛나고 있는 백금발이 눈에 들어오자 자신이 그를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으앗!!"
순간 벌떡 일어난 루비아는 얼굴을 붉히며 침대에서 벗어났다.
"죄....죄송해요!!! 언제 올라온거지??? 죄송해요!!! 성추행할 생각은 없었어요!"
아침이라 더욱 곱슬거리는 루비아의 머리카락이 부시시하게 흘러내렸다. 그녀는 그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당황해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죄송해요..."
에델베인은 그녀의 허둥대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한 손으로 뒷목을 쓸어내렸다. 에델베인의 얼굴에 미묘한 부끄러움이 스쳤다.
그리고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저는 슬슬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니 좀 더 주무세요."
그 말에 루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눈을 감았다.
그녀가 곤히 잠드는 모습을 확인한 뒤, 에델베인은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마지막 시선을 남기고는 조용히 옷을 챙겨 입은 뒤, 기사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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