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하고, 단정한 향이 밤공기 속에서 느껴졌다.
달빛에 반사되어 은은하게 빛나는 머리카락, 그리고—
"에....에델베인 카멜리아스님??!!!"
놀란 내 목소리에 그의 시선이 천천히 나를 향했다.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가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당황스러운 건 나만이 아닌 듯했다.
그의 어깨 위 기사 엠블럼이 흐린 가로등 불빛 아래 반짝였다. '에델베인 카멜리아스'라는 이름을 들은 취객은 흠칫 놀란 눈빛으로 우리를 번갈아 보더니,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해있는 틈을 타 조심스럽게— 그러나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갔다.
"루비아 씨, 괜찮으십니까?"
그가 천천히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어둠에 녹아드는 목소리는 평소처럼 침착했지만, 묘하게 따스한 온기가 실려 있었다.
"ㄴ...네 괜찮아요.."
나는 머리 위로 높이 들고 있던 돌을 조심스레 내렸다.
손에 힘을 빼자 차가운 돌덩이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고, 쓰레기 자루 옆으로 굴러갔다.
"하하... 하마터면 카멜리아스님을 공격할 뻔했네요..."
민망한 웃음을 얹으며 나는 고개를 숙여 그에게 인사를 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나의 손에서 떨어진 돌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나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의 입가에 잠시 미소가 스쳤던 것 같았다.
"자기방어를 염두에 두셨다니,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나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이 시간에 혼자 계시는 건 위험합니다. 제가 식당까지 동행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은은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온종일 음식 냄새와 땀 냄새에 찌든 나와는 달리, 회식으로 인해 오랜 시간 식당에서 식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방금 씻고 나온 사람처럼 깔끔하고 단정한 향을 풍겼다.
'귀족은 다르긴 하네...'
나는 내몸에서 나는 냄새가 신경 쓰여, 무심코 뒤로 한 발 물러섰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가게도 이 근처고.. 마음만 받을게요."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며 말을 꺼냈지만, 그는 개의치 않다는 듯 다시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기사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단호한 말투였다.
결국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까지는 걸어서 10분 남짓이었지만—이 이상 거절하는 것도 무의미했다.
정적이 흐르는 밤길.
우리를 감싸는 건 어둠과 지독한 침묵이었다.
그는 귀족이고, 나는 평민이다.
이렇게 나란히 걷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기에, 나는 먼저 입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말없이 걷던 중, 어느새 튜벨로즈 식당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향해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카멜리아스님. 덕분에 안전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바로 앞이 식당이니... 여기까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는 나를 한 번, 식당을 한 번 쳐다보더니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고개를 숙이며 마지막 인사를 한 뒤, 식당을 향해 돌아서던 그 때—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고 뒤에서 그의 낮지만, 부드러운 목소리가 등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나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네 감사합니다. 카멜리아스님도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어요."
말이 끝나자 어색한 정적이 다시 흘렀다.
나는 식은땀을 손등으로 몰래 훔치고 몸을 돌렸다.
"그...그럼 이만"
다시 식당으로 향하려던 찰나— 그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무...무슨!!"
그는 아까 골목길에서처럼 내 앞에 바짝 다가와 섰고, 놀란 나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에델베인으로 불러주셔도 괜찮습니다."
그 한마디만을 남긴 그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네?"
어정쩡하게 선 채로, 나는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남은 건 조용한 공기와—희미하게 맴도는 그의 향기뿐이었다.
그 뒤로는 매일이 이상했다.
매번 저녁 영업이 시작하면, 그는 식당에 와서 식사했다.
우리 가게는 귀족이 드나드는 곳이 아니었기에(왕국 기사들 빼고) 그의 등장은 매번 눈에 띄었다.
귀족이기만 해도 당연히 눈에 띄는데
그가 누군가.
바로 그 '에델베인 카멜리아스'이다.
부모님과 남동생 에드거는
"역시 우리 집 음식이 맛있기는 하지!"
라며 좋아했고
여동생 웬디는 잘생긴 사람이 찾아와서 매일이 행복하다—며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지만,
나는 점점 불편해졌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주방에 있는데도 묘하게 눈이 마주치는 게
관찰당하고 있다는 느낌?
그렇게 두 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가 식당에 찾아왔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점차 그의 발걸음이 '습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웬디 대신 직접 음식을 들고 그의 테이블로 향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음식을 들고 그의 테이블로 향했다. 손에 들린 그릇이 유난히 뜨겁게 느껴졌다. 조심스레 그의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그는 책을 덮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머리칼이 은은하게 흔들렸고, 그 아래로 푸른 눈동자가 내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는 눈이 살짝 커졌다.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나도 일단은 미소를 지었지만, 눈까지 웃지는 못했다.
"...저희 식당 음식이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그는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아...네. 매우 맛있습니다."
"다행이군요"
주방으로 돌아오니 웬디가 삐친 얼굴로 다가왔다.
"언니! 왜 내 일 뺏어가!! 내가 드리고 싶었단 말이야!"
나는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아무 말 없이 다시 내 자리로 향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은 불편했다. 시선이 계속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그가 식사를 마치고 조용히 식당을 나서는 모습을 확인한 나는 조용히 주방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들꽃 하나.
식당 옆 골목길 담벼락 아래에서 자라는 이름 모를 꽃을 일부러 꺾었다.
그가 뭔가를 떨어뜨리고 갔다고 핑계를 대기에,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발걸음을 서둘러 그를 따라잡았다.
"저기...! 에델베인 카멜리아스님!"
그는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렸다.
가로등 불빛 아래,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여져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다가가, 꺾은 들꽃을 그의 손에 올려주었다.
"이거... 두고 가셨습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손에 얹힌 꽃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나는 시선을 그의 얼굴에 고정하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혹시 저에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
의아하다는 듯 그의 푸른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망설임이 그의 표정에 떠올랐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렇게 보시면 누구라도 알 것입니다."
말끝에 담긴 짜증을 그는 눈치챘는지, 잠시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어색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불쾌하게 느끼셨다면... 제 잘못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내 눈을 바라보며,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신경이 쓰여서...그만..."
아도니아 왕국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검은 곱슬머리와 보라색 눈동자.
그 또한 이질적인 나의 모습에 쳐다본 것인가 하는 생각에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의 무엇이 불편하셨기에 그리 쳐다보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의 답변은 빠르고 확고했지만, 내 불쾌함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식사하러 오신 거면 식사만 해주세요.
계속 시선을 느끼는 것도, 따라오는 것도 불편합니다."
그 말에 그는 잠시 침묵했다.
눈길을 떨구던 그는 이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 전보다 훨씬 진지했고,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루비아 씨에게 호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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